2008년 02월 18일
수몰 피아노 -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이 있는.
사토 유야의 책 중에 졸자가 읽은 거라곤 '플리커 스타일',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과 파우스트에서 연재중인 '色시리즈' 정도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 그의 글은 멋모르고 먹었다간 죽을 것이 분명한 독사과같은 글이라는 것이었다(*1). 그리고 최근에 발매된 수몰 피아노 역시 첫 페이지를 열고 첫 문장을 읽은 순간, 그런 예감이 빗나가지 않고 적중했다. 아아, 젠장. 또 이런 식인가?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지루하디 지루한, 프리터의 자기 고백만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언급되는 다른 시점의 이야기는 도대체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걸 독자에게 읽으라고 던져준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어떤 집안의 과거와 학교의 동급생 소녀를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이야기가 프리터의 고백, 그리고 프리터의 앞에 나타난 남자 - 카가미 소지에 의해 맞물려, 하나의 틀을 맞춰가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가서 이 모든 이야기가 무엇때문에 언급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장면에서는, 길고 긴 어두운 동굴 속에서 출구를 찾은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출구를 찾은 듯한 느낌이 철저하게 '읽기 괴로운 글'을 깔아둔 후에 급작스레 전개된다는 것이 문제다. '플리커 스타일'이나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 있다면, 플리커~와 에나멜~이 일종의 히어로적인 화자(*2)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며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 반면, 수몰 피아노는 독자로 하여금 절로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화자라는 게 문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혀 공감가지 않아' 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몰 피아노' 에는 독자가 기억해야할 주제가 있다.
과거를 잊지 말라.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라.
자신이 했던 모든 것에서 도망치지 말라.
사람들은 자신의 꺼림칙한 과거를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자기 자신도 그걸 잊으려 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자신의 문제를 고칠 수도 없다.
그러니 잊어서는 안된다.
도망쳐서도 안된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것을 품에 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토 유야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읽는 것만으로도 거북해지는, 다 읽고 난 뒤엔 속이 쓰린 이 이야기를 독자에게 던져준 것이 아닌가 싶다.
너희들은 어떠냐. 이걸 읽고 나서도 그렇게 살 거냐? 라는 질문을 이리 꼬고 저리 꼬고, 있는 힘껏 비틀어서.
그렇기에 이 책은 분명 독자를 가리는 책이 될 것이다.
철저하게 작가에게 맞춰줄 수 있는, 인내심 강한 독자만이 읽을 수 있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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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사토 유야의 글이 독사과같은 글이라고 느껴진 것은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때문이다. 얼마 전에 심의에 의해 이 책에 빨간딱지가 붙은게 단순히 일본 장르문학에 대한 편파적 판정이라기보단, 실제로 일본의 서브컬쳐 전반에 걸쳐 뚜렷하게 나타나는 폭력성을 감안해 볼때 올바른 판정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빨간딱지가 붙어있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사서 볼 중/고교생이 있으리라는 건 말 안해도 아시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독사과와도 같은 것이다. 겉보기는 맛있어 보이지만, 한입 베어물면 뼈아픈 고통밖에 없는.
*2 : '플리커~' 에서는 카가미 키미히코가 여러모로 행동적이었고(자기자신의 정신이 망가져가고있었다 하더라도), '에나멜~' 에서는 전지적인 화자 격에 해당하는 카가미 료코가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도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기에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음 장을 기대하는 맛이 있었으나, '수몰~' 에서의 전지적인 화자라 할 수 있는 카가미 소지는 수수께끼같은 말만을 던질 뿐, 이야기에 걸쳐 크게 활약하는 장면이 없다. 마지막에 가서야 어느정도 두각을 보이기는 하지만, 전작의 두 주인공과 비교해 보면 너무 밋밋한 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소지라는 캐릭터 자체가 카가미 家에서 '빠져나온' 캐릭터이기 때문일까?
+ 여담이지만, 책 광고 띠지의 '미시마 유키오 상 수상작가 사토 유야' 라는 건 조금 쓴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일본 대중문학만 알고 있는 작가가 광고 띠지만 보고 책을 사서 들었다간 한방 먹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지루하디 지루한, 프리터의 자기 고백만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언급되는 다른 시점의 이야기는 도대체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걸 독자에게 읽으라고 던져준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어떤 집안의 과거와 학교의 동급생 소녀를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이야기가 프리터의 고백, 그리고 프리터의 앞에 나타난 남자 - 카가미 소지에 의해 맞물려, 하나의 틀을 맞춰가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가서 이 모든 이야기가 무엇때문에 언급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장면에서는, 길고 긴 어두운 동굴 속에서 출구를 찾은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출구를 찾은 듯한 느낌이 철저하게 '읽기 괴로운 글'을 깔아둔 후에 급작스레 전개된다는 것이 문제다. '플리커 스타일'이나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 있다면, 플리커~와 에나멜~이 일종의 히어로적인 화자(*2)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며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 반면, 수몰 피아노는 독자로 하여금 절로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화자라는 게 문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혀 공감가지 않아' 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몰 피아노' 에는 독자가 기억해야할 주제가 있다.
과거를 잊지 말라.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라.
자신이 했던 모든 것에서 도망치지 말라.
사람들은 자신의 꺼림칙한 과거를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자기 자신도 그걸 잊으려 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자신의 문제를 고칠 수도 없다.
그러니 잊어서는 안된다.
도망쳐서도 안된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것을 품에 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토 유야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읽는 것만으로도 거북해지는, 다 읽고 난 뒤엔 속이 쓰린 이 이야기를 독자에게 던져준 것이 아닌가 싶다.
너희들은 어떠냐. 이걸 읽고 나서도 그렇게 살 거냐? 라는 질문을 이리 꼬고 저리 꼬고, 있는 힘껏 비틀어서.
그렇기에 이 책은 분명 독자를 가리는 책이 될 것이다.
철저하게 작가에게 맞춰줄 수 있는, 인내심 강한 독자만이 읽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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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사토 유야의 글이 독사과같은 글이라고 느껴진 것은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 때문이다. 얼마 전에 심의에 의해 이 책에 빨간딱지가 붙은게 단순히 일본 장르문학에 대한 편파적 판정이라기보단, 실제로 일본의 서브컬쳐 전반에 걸쳐 뚜렷하게 나타나는 폭력성을 감안해 볼때 올바른 판정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빨간딱지가 붙어있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사서 볼 중/고교생이 있으리라는 건 말 안해도 아시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독사과와도 같은 것이다. 겉보기는 맛있어 보이지만, 한입 베어물면 뼈아픈 고통밖에 없는.
*2 : '플리커~' 에서는 카가미 키미히코가 여러모로 행동적이었고(자기자신의 정신이 망가져가고있었다 하더라도), '에나멜~' 에서는 전지적인 화자 격에 해당하는 카가미 료코가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도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기에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음 장을 기대하는 맛이 있었으나, '수몰~' 에서의 전지적인 화자라 할 수 있는 카가미 소지는 수수께끼같은 말만을 던질 뿐, 이야기에 걸쳐 크게 활약하는 장면이 없다. 마지막에 가서야 어느정도 두각을 보이기는 하지만, 전작의 두 주인공과 비교해 보면 너무 밋밋한 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소지라는 캐릭터 자체가 카가미 家에서 '빠져나온' 캐릭터이기 때문일까?
+ 여담이지만, 책 광고 띠지의 '미시마 유키오 상 수상작가 사토 유야' 라는 건 조금 쓴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일본 대중문학만 알고 있는 작가가 광고 띠지만 보고 책을 사서 들었다간 한방 먹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 by | 2008/02/18 09:09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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